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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자의 의무를 다해야 참다운 부자

 

부불삼세(富不三世), 부자 삼대 못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12, 300년에 걸쳐 만석꾼(1년 쌀 수확량이 만 석인 대단한 부자)을 지낸 집안이 있다. 바로 `경주 최 부잣집이다. 필자는 2003년부터 두 번에 걸쳐 경주박물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최 부자댁에 가본 적이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부자였던 경주 최 부잣집이 16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300년 동안이나 만석꾼의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집안 대대로 철칙으로 내려오는 6가지 가훈에 있었다.

 

첫째, 진사 이상 벼슬은 하지 마라`

벼슬을 하면 욕심의 끝이 없어 권력의 맛을 들이게 되고, 결국에는 다툼에 휘말려 온 가족이 화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최 부잣집은 돈만 잡고 권력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선택과 집중, 이른바 정경분리(政經分離)를 실천한 것이다.

 

둘째, 만 석 이상 재산 사회에 환원하라

최 부잣집은 1년 소작료 수입이 만 석을 넘기지 않았으며, 그 이상은 소작료 할인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다. 다른 부잣집들이 소작료를 수확량의 70% 정도 받았다면 최 부자는 40%에서 멈췄던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아파하는 게 우리네 인심이었지만 최 부자가 논을 사면 박수를 쳤다고 한다.

 

셋째,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 것

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천 명씩 굶어 죽는 시대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는 논과 밭을 그야말로 헐값으로 내다 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 부잣집은 이런 논과 밭을 결코 사들이지 않았다. 가진 사람이 취할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넷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1년에 약 1천 석의 쌀을 과객들의 식사대접에 사용했다.

뿐만 아니라 과객들이 묵고 가는 사랑채에는 별도의 뒤주를 둬 누구든지 쌀을 가져가 다음 목적지까지 노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최 부잣집의 인심은 널리 알려졌으며, 민란 등 사회적 혼란기에도 폭도들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째,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주변이 굶어죽는데 나 혼자 만석꾼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부자 양반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경주를 중심으로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쌀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여섯째, 며느리는 무명옷을 입어라

집안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은 보릿고개 때는 쌀밥을 먹지 못하게 했고, 은수저도 사용하지 못했으며, 시집온 후 3년간은 무명옷만 입도록 했다. 절약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흔히 빌 게이츠를 가진 자의 의무를 다 하는 사람으로 비유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경주 최 부자와 같은 참다운 부자가 있었다. ‘가진 자의 의무를 다하는(노블리스 오블리제)’ 멋진 부자가 더 많았으면 한다.

 

 

 

기사제공처 : seosoo@ch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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