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미국 ‘개조심’ 주간 캠페인
2011.05.26 23:13
[우정이야기]미국 ‘개조심’ 주간 캠페인
집배원이 어느 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갔다. 문짝에 큰 글씨로 ‘개조심’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를 보고 집배원이 하는 말, “개조심씨 계십니까, 여기 편지 왔습니다.”
개에 물린 자국을 보여주는 미국 집배원.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유머를 보고 웃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다름아닌 집배원이다. 집배원에게 개는 장난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덤벼들지 모르는 현실적 위험이자 공포의 적(敵)이다.
지난 1월 충북 충주에서 우체국 집배원이 맹견에 물려 엄지발가락에 피를 흘리는 부상을 당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서 119 구조대는 집배원을 먼저 대피시키고 어렵사리 개를 포획해 주인에게 인계했다. 구조대원들은 개 주인에게 “개를 쇠사슬에 매달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충청일보 1월 23일자)
이런 일이 미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여러가지 따져봐야 할 주변 정황이 있지만 적어도 개 주인에게 개를 순순히 넘겨주면서 당부의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우선 개 주인은 개를 묶지 않고 놓아 기르다 사람을 해치게 했다는 점에서 처벌 대상이 된다. 지역에 따라 조례가 다르지만 1500 달러가량의 벌금을 물리는 곳이 많다. 개는 동물보호소에 감금되어 공격성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 안락사를 검토하게 된다. 개 주인 집과 인근 동네에는 당분간 우편배달이 중단된다. 아무리 개를 좋아하는 미국인들이라 해도 사람을 무는 경우엔 단호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기실 미국에서도 개는 골치 아픈 존재다. 보통 사람들은 개를 끔찍이 여기지만 집배원을 무는 사고는 매년 늘어가기 때문이다. 미 우정청(USPS)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집배원이 개에 물린 사례가 5669건 발생했다. 이 부상자 5명 중 1명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해 치료비로만 120만 달러(130억원)가 들어갔다고 한다.
USPS는 여러가지 처방을 쓴다. 그 중 하나가 캠페인이다. USPS는 매년 5월 셋째주(올해는 15일부터 21일까지)를 개조심 주간으로 정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다. 이때가 되면 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한 봄날이 되어 활동성이 강해진 개들이 사람을 물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개가 집배원을 문 사고 도시 톱 10’ 같은 것을 발표하기도 한다. 지난해 개에 물린 사고가 휴스턴에서 62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로스앤젤레스 44명, 루이스빌 40명, 시애틀 28명 하는 식이다. 해당 도시에 경각심을 주자는 취지다.
개조심 주간이 되면 USPS는 질병조사국(CDC), 동물애호협회(HSUS)에서 나온 전문가들과 함께 개 주인들에게 개의 종류에 따른 특성과 사고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수칙 같은 것을 집중 교육한다. ‘집배원이 왔을 때 개를 방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라’ ‘위험하면 개를 거세시켜라’ 같은 내용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개는 절대 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개는 자기영역을 보호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주인 집을 자기영역으로 아는 개는 집배원이 들어오면 적(敵)으로 인식해 공격하기 쉽다는 것이다.
미국의 집배원은 개의 공격에 대비해 스프레이를 갖고 다닌다. 이 때문에 가끔 시비가 일기도 한다. 2008년 5월 미 캘리포니아 헌팅턴 비치의 한 부잣집에 우편물을 배달하던 여자집배원이 개에게 스프레이를 쏘고 피신했다. 그녀는 911 구조대에 구조요청을 해 위기를 넘겼지만 조사를 받아야 했다. 개가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집배원이 스프레이를 먼저 쏘아 개에게 고통을 안겨줬다고 개 주인이 주장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 개 주인이 잘못을 깨닫고 집배원에게 사과하면서 일단락됐으나, 이번엔 그 집배원이 과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전설의 수영선수 셜리 바바쇼프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집배원을 개의 공격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USPS의 정책은 우리 눈으로 보면 신기할 정도다. 전국에서 일어나는 개 사고를 끝자리 숫자까지 집계하고, 개 주인에게 벌금을 물리고, 전국적으로 캠페인을 여니까 말이다. ‘소비자가 왕’인 나라가 미국이라고 하지만 집배원의 안전을 위해서는 소비자를 불편하게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철학이 엿보인다. 집배원이 개에게 물리면 약국에 가서 밴드 하나 사서 붙이면 그만이고, 우체국에 보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정과 어쩔 수 없이 대비가 된다.
2011 05/31ㅣ주간경향 927호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댓글 0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846 | 우체국 집배원, 핸드폰 사기범 검거 도와 | 아주 | 2011.06.26 | 1118 |
| 845 |
내손 안에 우체국, 스마트폰 우편서비스 실시
| 아주 | 2011.06.06 | 778 |
| 844 | “공적금융 강화”…우정사업본부 주력사업 개편 | 아주 | 2011.06.06 | 839 |
| 843 | [우정이야기] 우체국 경영비전 '대한민국을 하나로, 세계 속의 한국우정' | 아주 | 2011.06.06 | 758 |
| 842 |
이승재 서울지방우정청장 취임
| 아주 | 2011.06.06 | 971 |
| 841 | [우정 이야기] 친서민 우체국금융 | 아주 | 2011.05.26 | 803 |
| » |
[우정이야기]미국 ‘개조심’ 주간 캠페인
| 아주 | 2011.05.26 | 745 |
| 839 |
집배원·어린이, 호국영령에 무궁화 헌화
| 아주 | 2011.05.25 | 832 |
| 838 |
집배원, 화재진압으로 인명피해 막아
| 아주 | 2011.05.22 | 889 |
| 837 | 강원체신청 원주 강릉 등 6개 지역에서 52명 응시 | 아주 | 2011.05.22 | 1004 |
| 836 | "집배원, 중과실 없으면 등기 배달사고 책임없어" | 아주 | 2011.05.14 | 1079 |
| 835 |
“도로명 헷갈려”… “집값 하락”… 새주소 스트레스
| 아주 | 2011.05.10 | 1124 |
| 834 |
할머니 목숨 구한 집배원
| 아주 | 2011.05.03 | 872 |
| 833 |
폐지 줍는 천사 집배원들
| 아주 | 2011.04.30 | 926 |
| 832 |
[철원]`나눔의 행복' 전하는 집배원들
| 아주 | 2011.04.26 | 1342 |
| 831 | [우정이야기]산불 끄는 집배원 | 아주 | 2011.04.23 | 935 |
| 830 |
부산 동래우체국 황성화 집배원, 정보통신의 날 ‘대통령 표창’
| 아주 | 2011.04.23 | 1059 |
| 829 | 집배원과 장애인의 '아름다운 동행' | 아주 | 2011.04.10 | 883 |
| 828 |
오지랖 넓어 아름다운 집배원…구미 김동섭씨
| 아주 | 2011.04.10 | 864 |
| 827 |
[우정이야기]편지 한 통에 목숨 바친 집배원
| 아주 | 2011.04.10 | 8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