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정 민영화 ‘한·일 토양’이 다르다
2008.02.11 23:53
[우정이야기]우정 민영화 ‘한·일 토양’이 다르다

우정공사에서 간판을 바꿔 단 일본우정지주회사 건물.
우정사업본부 민영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본을 이야기한다. 정보통신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민영화 방안으로 보고한 것도 일본 모델이고, 인수위가 민영화를 재촉하면서 제시한 모델 또한 일본이다. 언론에서 우정 민영화를 다룰 때도 일본 사례는 빠지는 법이 없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의회 해산이란 초강수를 두면서 추진한 우정 개혁을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다. 요컨대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했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있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인식의 오류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우정사업 환경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는 사실에 눈감은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다르니만큼 민영화의 파장과 의미도 다를 수밖에 없으나 한 바구니로 인식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먼저 규모를 보자. 민영화 이전 일본의 우정공사는 문자 그대로 거대 공룡이었다. 정규직원만 26만 명, 보유자금은 예금과 보험을 합쳐 360조 엔이었다. 워낙 천문학적이어서 머릿속에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일본의 4대 은행, 4대 생명보험회사 자산을 합친 것보다 우정공사 한 곳의 예금·보험자산이 더 컸다. 전체 예·보험의 60%가량을 우정공사가 가져갔다.
반면 우리의 우정사업본부는 예금에서 7위, 보험에서 5위다. 일본에선 “시중의 돈을 우체국이 싹쓸이해간다”는 비판이 많지만, 우리에겐 타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도 시중은행과 보험회사들은 “우체국이 정부의 지급보증과 세금면제를 무기로 불공정 게임을 하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 미국 측에서도 서민금융 차원에서 양해하고 넘어간 사안이다.
다음, 우체국의 위상을 보자. 얼마 전까지 우리는 술자리에서 빈 잔을 앞에 놓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우체국장’이라고 했다. 과거 지역기관장 모임에서 힘 있는 기관장은 잔 비우기가 무섭게 누군가가 따라주지만 우체국장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빈 잔이 그대로 있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힘 없는 우체국장을 상징하는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우체국장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전체 우체국의 70%를 차지하는 특정 우체국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지역 유지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우정사업을 위탁받아 운영한다. 국가공무원 신분이지만 시험을 거치지 않고 임용되며 대대손손 세습할 수 있다. 선거 때는 자민당의 집표원 역할을 한다. 이들이 좌지우지하는 표가 지역구별로 3만 표쯤 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러니 정치인과 결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지원을 받는 의원들이 ‘우정족(族)’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민영화 법안이 자민당 내에서 부결되었던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마지막으로 우정 민영화가 갖는 정치·사회적 함의를 보자. 일본은 우정 민영화를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대개혁이라 부른다. 금융산업부터 정부 관료 및 정치인까지 철옹성처럼 단단한 기득권 집단을 깨부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하루 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문제였다. 우정청에서 민영화 단계에 이르는 데 7년이 걸렸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우정 민영화가 거의 공론화한 적이 없다. 우체국 경영이 방만하므로 민영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본 적이 있는가. 신문기사 검색사이트(kinds.or.kr)에서 10년치 기사를 뒤져도 그런 글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인수위 박재완 TF팀장은 이번 정부 조직 개편을 가리켜 “단군 이래 최대 개혁”이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를 공사화해 직원 3만2000여 명을 민간인으로 돌리면 역사상 최대 규모로 공무원 수를 감축한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이다. 일본의 우정 민영화는 ‘구조개혁의 집대성’, 한국의 우정 민영화는 ‘공무원 수 줄이기’ 차원에서 추진된다는 결정적 차이를 드러내는 셈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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