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미국선 지금 “우리 동네 우체국 살려달라”
2009.12.11 23:10
[우정이야기]미국선 지금 “우리 동네 우체국 살려달라”
미국의 문화·예술 중심지인 뉴욕 브로드웨이. 얼마전 이 거리에서 주민 150여 명이 예술공연과는 전혀 무관한 문제로 한자리에 모였다. 브로드웨이에서만 우체국 4곳을 폐쇄할 예정이라는 우정청(USPS) 발표를 듣고 나온 것이다.
이곳을 관할하는 올버니 우체국의 데이비드 야니 국장 등 관계자들이 청중을 향해 설명해 나갔다. “경기 침체로 우편 물량이 줄어들면서 우체국 수입이 크게 줄었습니다. USPS 적자가 올해 70억달러(약 7조1500억원)입니다. 그래서 일부 우체국을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폐쇄 명단에 오른 우체국을 보세요. 인근 주민 셋 가운데 한 명은 신규 이민자이거나 노인, 아니면 운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반대하러 나온 사람들을 보세요. 더 늦기 전에 이제라도 폐쇄 방침을 철회하세요.” “내가 알기로 우체국의 설립 목적은 대국민 서비스입니다. 수익을 많이 내자는 게 아닙니다. 언제 설립 목적이 바뀌었나요?”
주민설명회의 광경을 묘사한 현지 언론은 참석자들이 내는 목소리가 고함에 가깝다고 전하고 있다. 우체국을 살리기 위한 주민들의 절규인 것이다.
문제는 이런 모습이 브로드웨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8월 우정청이 우체국 700곳을 폐쇄 또는 병합키로 했다며 그 명단을 공개한 뒤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광경이다. 지역마다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참석자들은 거의 한 목소리로 ‘반대’를 외친다. 뉴욕주 시러큐스에서는 엘름우드라는 우체국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수차례 집회를 가졌고, 수천명이 청원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우체국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미국 정가에는 평소 보기 어려운 일도 종종 벌어진다. 상·하원 의원들이 존 포터 우정청장에게 “우리 지역 우체국 좀 살려 달라”며 민원하는 것이다. 에릭 마사 공화당 의원은 최근 포터 우정청장에게 편지를 보내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지 못했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우정청이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우편물 처리시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 해 만나서 얘기 좀 하려 해도 만나 주지 않는다는 불만이다. 포터 청장은 지난 9월에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우정청 구제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청했는데 졸지에 입장이 뒤바뀐 셈이다.
우정청이 우체국 숫자를 줄이려는 까닭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경비 문제 때문이다. 적자가 지속되면서 이대로 가다간 존립이 어렵다는 판정이 내려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정청은 경비절감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태세다.
전 직원 임금 동결 및 명예퇴직 유도, 신규인원 채용 중단, 활용도 낮은 시설 매각 등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이미 취했거나 계획중에 있다. 앞으로는 우체국에서 휴대전화도 팔고 보험상품도 팔 수 있도록 사업영역을 넓히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우체국 줄이기는 이 구조조정의 일환인 것이다.
현재 미국의 우체국은 모두 3만2741개다. 우정청은 당초 이 가운데 10%인 3200여 개를 폐쇄 대상으로 분류했으나 아무래도 무리하다고 판단한 듯 700곳으로 줄였다. 그러나 이 700곳 또한 반발이 만만치 않아 최종 결과는 두고 볼 일이다. 미국에서 우체국 700곳이 한꺼번에 없어진다 해도 우리나라에 비하면 우체국과 주민의 거리는 여전히 가깝다. 3만2000개의 우체국을 미국 전체 인구로 나누면 9500여 명당 한 곳 꼴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인구 1만3700명당 1곳 꼴인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다.
우체국 숫자는 선진국의 척도이기도 하다. 2008년 우편통계편람에 따르면 독일·프랑스·영국·일본에는 우체국이 인구 3000~6000명당 한 곳 꼴로 있다.
반면에 인도네시아는 1만1000명, 태국은 1만4000명, 말레이시아는 2만6000명, 중국은 2만2000명당 한 곳밖에 안된다. 서방 선진국보다는 떨어지고 동남아 국가보다는 나은 우리의 국가 수준이 우체국 숫자에 투영돼 있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출처 2009 12/08 위클리경향 853호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686 | 부산체신청, '훈훈한 세밑봉사' | 아주 | 2009.12.25 | 648 |
685 |
사랑의 저금통으로 이웃돕는 안성우체국 유봉열씨
![]() | 아주 | 2009.12.25 | 814 |
684 |
경북체신청, 연말까지 '사랑의 산타우체국' 운영
![]() | 아주 | 2009.12.21 | 625 |
683 |
전북체신청.전주우체국 효자동 시대 개막
![]() | 아주 | 2009.12.19 | 690 |
682 | 우정사업본부, '사랑나눔' 행사 개최 | 아주 | 2009.12.19 | 664 |
681 |
우체국 집배원이 시신 훼손 막아
![]() | 아주 | 2009.12.19 | 794 |
680 |
훤히 보이는 우편기술
![]() | 아주 | 2009.12.19 | 603 |
679 | 전국 491곳 우편번호 조정·신설 | 아주 | 2009.12.18 | 785 |
678 | 복지시설 어린이들의 따뜻한 “미리 크리스마스” | 아주 | 2009.12.18 | 566 |
677 | 2010년도 우체국예금보험 위탁공익사업 제안서 접수 안내 | 아주 | 2009.12.15 | 631 |
676 |
우정사업본부, 사랑의 산타우체국 운영
![]() | 아주 | 2009.12.14 | 621 |
» |
[우정이야기]미국선 지금 “우리 동네 우체국 살려달라”
![]() | 아주 | 2009.12.11 | 630 |
674 |
[우정이야기] 북극 ‘산타편지’ 올해도 OK
![]() | 아주 | 2009.12.10 | 671 |
673 |
서울체신청, 서울경찰청과 '아동안전 지킴이집' 협약
![]() | 아주 | 2009.12.08 | 662 |
672 |
사라지는 우표…설렘과 낭만까지 잊힐라
![]() | 아주 | 2009.12.07 | 616 |
671 | 김장김치 소포 보낼 때 꼼꼼히 포장을 | 아주 | 2009.12.07 | 658 |
670 | 전 세계 크리스마스 우표를 만나고 | 아주 | 2009.12.07 | 642 |
669 |
달성군 집배원50명 산불예방요원으로
![]() | 아주 | 2009.12.04 | 709 |
668 | ‘우편물 중부권 물류센터’ 대전 건립 | 아주 | 2009.12.03 | 754 |
667 |
한림우체국 손성원 집배원 최고기록 공무원 선정
![]() | 아주 | 2009.12.03 | 795 |